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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를 위한 ESG 세레나데

#ESG#VC

​​​​​​​2020년을 투자의 관점에서 돌아보자면, 그야말로 'ESG의 한 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환경(Environmental)·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하는 ‘ESG'를 모르고서는 더 이상 투자를 이어가기 어렵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ESG가 자본시장의 기준으로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다.

글. 한상엽 소풍 벤처스 대표

자본시장에 불어오는 ESG 바람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ESG 펀드는 2011년 3천억 달러에서 2019년 9천억 달러까지 상승하였으며,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도, ESG를 고려한 지속가능펀드의 대부분은 상위 벤치마크를 능가하는 실적을 보였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S&P 500 Index에서 석탄과 관련된 비즈니스가 제외되는 등 글로벌 기업들의 넷제로(Net Zero) 선언도 뒤를 잇고 있다.

국내 벤처캐피털(이하 VC)도 이러한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근래 VC들 사이에서도 ESG와 관련된 주제가 빈번히 언급되며 출자제안서에는 ESG 관련 내용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출자자들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ESG 펀드의 투자 수익률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나 이 트렌드가 얼마나 이어질 것인지에 대한 의문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이 트렌드가 상당히 오랜 시간 자본 시장 내에서 이어진 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고민보다는 실행을 염두에 두게 될 것이다.

ESG의 개념은 기관이나 상황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기업의 운영과 전략 실행에 있어서 환경, 사회, 그리고 지배구조와 관련된 요소들을 포괄적으로 고려하는 것을 의미한다. ESG는 흔히 비재무적(non-financial) 정보라 불리며 맥락에 따라서 지속가능성(Sustainablity)으로 대체하여 사용해도 무리가 없다.

자본 시장에 ESG를 이식하는 본격적인 신호탄은 2006년 UN에서 출범한 PRI(책임투자원칙, 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가 쏘아 올렸다. 금융기관이 투자결정 시에 투자대상 기업의 ESG 이슈를 고려하도록 하는 이 국제적 협약에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2천여 개 이상의 자산운용사가 가입했다.

그간 ESG는 기업들의 자율에 맡겨져 왔다. 필요성을 인식한 일부의 기업들만이 지속가능성보고서 혹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을 통해 관련 지표들을 공개해왔다. 자율적으로 진행해오다 보니 전 세계에 ESG 표준을 제정하거나 평가하는 기관만 해도 수백여 개가 있으며, ESG 정보공개 표준만 해도 300여 개가 넘는다. 자연스럽게 ESG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존하는 수천 가지의 ESG 지표들 중에서도 공통의 지표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에서 작년 9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지표(Stakeholder Capitalism Metrics)'를 발표하며 비재무정보를 공시하도록 하며,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에서도 ESG 정보공개 표준 재정을 위한 '지속가능성 기준위원회(SSB, Sustainability Standards Board)를 통해 표준을 발표할 예정이다.

스타트업, ESG 수용 여부 주목

대상 기업의 ESG 요소를 검토하고 분석하는 것이 자본 투자 과정의 필수적 절차로 자리 잡아가는 상황에서, 스타트업들도 ESG를 수용하게 할 수 있을까? 탄소 배출이나 환경오염 등 기후 위기와 관련된 솔루션을 제시하는 기업들은 말 그대로 ESG의 E(Environment, 이하 환경 요소)에 해당되기 때문에 투자 유치나 시장 진출에 있어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 작년 여름 SK건설이 2000곳이 넘는 하수·폐수 처리 시설을 운영하는, 국내 최대 폐기물 업체인 ‘EMC홀딩스’를 1조 원에 인수했다.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사모펀드들과 함께 각축을 벌인 끝에 따낸 것이었다. 이 거래는 기존 투자자에게 5년 만에 20배가 넘는 매각 차익을 안겨 준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시기 세계 최대의 사모펀드 중 하나인 KKR(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 역시 국내 산업·의료용 폐기물 업체인 ‘이에스지 그룹’을 인수하기도 했다. 환경 분야는 이미 시장에서도 매력적인 투자처다.

E(환경요소)와는 다르게 스타트업들에게 ESG가 어렵게 다가오는 이유는 S(Social, 이하 사회 요소)와 G(Governance, 이하 지배구조 요소)에 해당하는 사회와 지배구조에 대한 항목 때문이다. 박봉에 야근이 잦은 스타트업의 현실에서 근로 환경과 인권, 공정성 등을 강조하는 S(사회 요소)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자 한가한 소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G(지배구조 요소)는 어떠한가. 대주주이자 독점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소수의 창업자들로 구성된 스타트업에게 주주의 권리나 이사회 운영, 배당 등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유니콘으로 등극한 쿠팡이나 배달의민족, 마켓컬리 등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자면 성장을 꿈꾸는 어떤 기업도 노동이나 지배구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특히 MZ세대들이 구성원의 다수를 이루는 스타트업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공정함’이 강조되고 있다. 이를 두고 최근 회자되는 ‘조직 공정성(Orgarnizational Justice)'의 개념에서는 S(사회 요소)와 G(지배구조 요소) 등을‘분배, 절차, 관계, 정보'로 설명한다. 튼튼하고 건강한 조직을 꿈꾸는 창업자들이라면 자연스럽게 의사결정의 결과와 과정, 소통을 고려해야 한다는 접근 방식이다.

ESG 혁신, VC의 중요성 커져

그래서 중요한 것이 VC의 역할이다. 기업이 태동하고 구조를 갖춰가는 초기에 투자를 하는 VC들은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당장의 생존을 넘어 그 이후를 함께 상상하고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 VC라면, 성장 이후에 마주할 문제나 위험들까지도 사전에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다가올 ESG의 파고에 스타트업들이 휩쓸리지 않고 대응할 수 있도록 ESG에서 강조하는 요소들에 대한 감수성을 심어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행히 단서는 많다. VC에 있어 가장 중요한 투자 기준은 창업자와 팀, 즉 조직이 아니던가?

현실은 만만치 않다. 여전히 많은 VC는 ESG나 임팩트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대기업마저 결과적 요소인 E(환경요소)만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S(사회 요소)와 G(지배구조 요소)를 투자 결정 시에 중요하게 고려하는 VC 역시 그 숫자는 미미하다. 현재로서는 연간 2천억 원 규모로 결성되어 전체 벤처투자에서 5% 정도에 달하는 임팩트 펀드들만이 그나마 발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책임투자의 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임팩트 투자 역시 ESG에 대한 시장의 요구에 완전히 대응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나 벤처캐피탈협회 등에서 스타트업과 VC가 고려해야 하는 ESG와 그 기준을 제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혁신을 만들어낸 창업자들이 부를 획득하고 또 많은 재산을 기부하는 것에 열광하는 것만큼이나 그 혁신의 과정에서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노동자들과 주주들, 그리고 환경에도 의미 있는 혁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시대적 요구에 가깝다.

머지않아 벤처캐피털들의 홈페이지에도 ESG라는 말이 등장하고, ESG펀드 혹은 임팩트 펀드를 결성하려는 VC의 움직임 역시 이전보다 빨라질 것이다. 출자자들에게 ESG의 요소를 직·간접적으로 강조하는 VC 역시 늘어날 것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자라면, 아니 생존을 고민하는 투자자라면 조금이라도 빠르게 시작하는 것이 좋다. 처음엔 피투자사의 비즈니스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ESG 요소를 식별해 위험을 낮추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나아가 피투자사들이 선도적으로 환경·사회·지배구조와 관련해서 혁신을 만들어내도록 VC가 촉진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사회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가장 혁신적이어야 할 스타트업과 가장 모험적이어야 할 벤처캐피털도 변신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아직 시간은 있다. 이번 달 시간을 내어서 UN에서 발간한 '책임투자원칙'이나 한국거래소의 'ESG 정보공개 가이던스' 혹은 국민연금의 'ESG 평가 지표'를 한번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 본문의 견해와 주장은 필자 개인의 것이며, 한국벤처투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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