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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를 알아야 살아남는다?
산업계를 휩쓴 ESG 광풍

#ESG#대기업#벤처기업

이상 기후로 지구촌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다. 북미 서부 지역에는 섭씨 50도 이상의 폭염이 발생해 온열 질환으로 800여 명이 사망했다.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등 유럽에서는 100년 만의 홍수가 발생해 200여 명이 목숨을 잃고 1300명 이상이 실종됐다. 중국과 일본, 호주는 역대급 홍수로, 영구 동토층 러시아 시베리아는 연일 30도 이상의 이상 고온으로 신음하는 상황이다.

글. 강경주 한국경제신문 기자

‘ESG 경영’이라는 트렌드가 내포한 ‘절박함’

전문가들은 기후 재난의 중심에 온실가스 배출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UN 등 많은 국제기구는 이상 기후의 주범으로 글로벌 대기업들을 지목했다. 경제적 이윤만 추구하는 기업 활동이 지구에 해를 끼치는 것을 넘어 인류 생존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정의했다.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하는 ‘ESG’는 이 같은 비판적 시각 위에서 탄생했다. 기업 활동이 지구에 해가 되는 게 아니라 도움이 되도록 경영 기조를 바꿔야 한다는‘절박함’을 내포하고 있다.

좀 더 풀이하면 ESG는 기업의 생산 과정이 친환경적이어야 하고 우리가 사는 사회에 도움을 주면서 지배 구조까지 투명하게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기업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별 수 없다. 최근 들어 ESG는 기업의 가치를 가늠하는 척도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대기업은 조직이 비대하다 보니 수십 년간 이어졌던 경영 관습에서 탈피하는 게 쉽지 않다. 이 같은 이유로 대기업들은 캠페인 수준에 머물던 사회 공헌 활동에서 벗어나 너 나 할 것 없이 ‘ESG 경영’을 선포하는 중이다. 그리고 환경 보호에 기민한 벤처기업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대기업-벤처기업 ESG 협력 사례…“서로에게 윈윈”

몇 가지 예가 있다. 효성그룹 내 화학섬유 제조업체 효성티앤씨는 최근 친환경 가방 제작 벤처기업 플리츠마마에 지분투자를 했다. 버려진 페트병을 재활용한 폴리에스터 섬유 ‘리젠’의 쓰임새 확대와 더불어 ESG 경영 강화 차원에서다. 효성티앤씨는 이번 투자로 시장 흐름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게 됐고 플리츠마마는 리젠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대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LG화학은 국내 벤처기업 이너보틀과 손잡고 플라스틱 화장품 용기를 재활용하는 ‘플라스틱 에코 플랫폼’을 구축했다. 해당 플랫폼은 소재(LG화학)→제품(이너보틀)→수거(물류업체)→리사이클(LG화학·이너보틀)로 이어지는 구조다.

LG전자는 미국 벤처기업 스레드업과 손잡고 현지에서 ‘세컨드 라이프’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누구든 평소 입지 않는 옷이나 사용하지 않는 액세서리 등을 기부함으로써 자신의 옷방을 정리하고 원하는 자선단체를 도울 수 있다. LG전자와 스레드업은 기부 받은 물품을 깨끗하게 세탁하고 정리해 직접 유통하는 것은 물론 자선단체에 기부까지 한다. 스레드업이 의류업계 이외의 회사와 재활용 캠페인을 펼치는 건 LG전자가 처음이다.

SK에코플랜트는 ESG 투자에 주력하는 국내 투자사 D3쥬빌리파트너스와 함께 밴처캐피털(VC) 펀드를 조성했다. 이를 통해 벤처기업과의 연계사업과 공동연구 등 다양한 상생모델을 찾겠다는 구상이다.

SK이노베이션은 중소기업벤처부, 창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창업도약패키지-대기업 협업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SK이노베이션은 ‘SK와 그린 스타트업이 함께 만든다’라는 의미를 담은‘에그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저탄소·배터리 및 폐플라스틱 재활용 등 친환경 역량을 보유한 20개 벤처기업을 선정해 지원하기로 했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이들 벤처기업이 SK이노베이션 계열 사업 자회사들과 협업해 공동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공동사업이 가능한 분야로는 ▲주유소 플랫폼 친환경 아이템 ▲폐플라스틱 수거·재활용 ▲전기차배터리 재활용 ▲생산설비 적용 저탄소 기술 등이다.

금융 대기업 중에서는 신한카드가 벤처기업 육성 프로그램 ‘아임벤처스 위드 비자’를 가동하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에 선정된 6개 벤처기업은 모두 ESG와 연관이 깊다.

ESG를 교집합으로 하는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협력은 양쪽 모두에게 ‘윈윈’(win-win) 효과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기업은 환경과 사회문제 해결에 책임을 다하고, 생생한 현장의 트렌드도 체득할 수 있다. 벤처기업은 대기업과의 정기적인 거래로 안정성과 성장 기회를 담보할 수 있어서다.

중소벤처기업부 등 정부기관도 ‘ESG 협력’에 깊은 관심

대기업과 벤처기업 간 교류가 늘면서 정부도 나섰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 7일 ‘오픈 이노베이션, ESG 상생과 혁신 성장’을 주제로 ‘2021 콘피니티 파트너스 데이’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콘진원이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동반성장을 위해 2018년부터 진행 중인 ‘콘텐츠 오픈 이노베이션(콘피니티·CONTENT+INFINITY)’ 사업의 일환으로 열렸다.

박경자 한국콘텐츠진흥원 기업인재양성본부장은 “대기업들이 올해부터 앞다퉈 ESG 경영을 선언한 만큼 벤처기업과의 협업이 더 중요해졌다”라며 “ESG 경영을 펴는 대기업은 앞으로 콘텐츠와 관련한 문화 마케팅 등 여러 방면에서 벤처기업과의 협업이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산업진흥원(SBA)은 친환경 비즈니스를 실천하는 소셜벤처 기업 트리플래닛, 이노버스와 함께 ESG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트리플래닛과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활용해 만든 스밈화분을 SBA 임직원이 직접 키우고 이를 지역사회 소외계층에 기부하는 방식의 ‘반려나무 입양사업’을 한다. 이노버스와는 친환경 사물인터넷(IoT) 컵 수거함 ‘쓰샘’을 활용해 직원들의 일상 속 분리배출 활동 동참을 유도한다.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 8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열린 ‘ESG 간담회’에서 “벤처기업이 대기업의 ESG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중소기업중앙회와 대한상공회의소가 함께 고민해 달라”라며 가교 역할을 자처했다.

‘ESG 기업 투자=성공’ 공식 자리 잡아

대기업과 벤처기업, 정부 기관의 ESG 접점 확대를 ‘비용’으로 봤던 일부 회의적 시각은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환경을 우선시하는 게 수익으로 연결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지난해부터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어서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핑크 회장은 “앞으로 ESG 성과가 나쁜 기업에 투자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ESG 기업 투자=성공’이라는 공식은 이제 업계에서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다.

실제로 글로벌 ESG ETF 시장규모는 2010년 220억달러(한화 약 25조4000억)에 불과했지만 2019년말 600억달러(69조3000억)를 넘어서더니 지난해 말에는 1900억달러(220조)에 육박했다. 1년 사이 몸집을 3배 가까이 불렸다. ESG가 돈이 된다는 인식이 수치로 드러난 셈이다.

ESG 경영을 하는 기업일수록 실적도 좋다. ESG 대표지수로 꼽히는 MSCI 글로벌 ESG리더스 지수(MSCI ACWI ESG Leaders Index), 그리고 ESG 요소가 빠진 MSCI 전 세계 지수의 15년 누적 수익률을 살펴보면 ESG 지수 수익률이 21% 포인트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ESG 경영을 하지 않으면 투자 유치에 큰 제약이 생긴다는 말도 나온다. 대기업들이 부랴부랴 벤처업계에 손을 내미는 수밖에 없는 사업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산업계를 휩쓴 ESG 광풍은 단순히 유행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기업 경쟁력을 가늠하는 최우선 지표로 쓰이는 것은 물론 기업 이미지에 크게 작용한다. 호감도가 낮은 기업에 누구도 투자하려 들지 않을 게 뻔하다. 소비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모든 대기업들은 처음부터 대기업이 아니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의든 타의든 온실가스를 배출했을 가능성이 높고, 사회적 약자를 어쩌면 그냥 지나쳤을지 모른다. 벤처업계를 향한 대기업들의 ESG 행보는 어쩌면 이 같은 ‘마음의 빚’에서부터 비롯됐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더 다양하고 더 큰 규모의 ESG 협력 소식이 지속적으로 들려오길 기대해본다.

※ 본문의 견해와 주장은 필자 개인의 것이며, 한국벤처투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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